2014년 12월 28일 일요일

후회 혹은 미련

간만에 쉬는 일요일에 한가함을 즐겨보려고
성북동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걸어다니던 중에
길상사 앞을 지나가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너무 늦은 후회를 한 한 여자의 이야기가 기억 나는군요
-후회였는지 단순한 미련이었는지는 모르겠 지만요-


백석이라는 시인을 기억하시는 분들 계시겠지요
월북시인으로 몰려서 한동안 이나라에서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금기시 됐던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원래 병안도에서 태어나신 분인데 고향에 계시다가 6.25 전쟁이 발발해서
못 내려오셨으니 그런분을 구지 월북이라고 분류하는것 자체가 불합리 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이분이 서울에 계실때 4살 연하의 김영한 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생과 연애를 시작했다는 군요
이 애인을 끔찍이 아껴서 이름대신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서 불렀다는 군요 무척 정감이 가는 호칭이지요
그러던 어느날 현실에서 자기 자신과 기생의 신분인 연인과 맺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한 로맨틱한 시인은
연인인 김영한 에게 사랑의 도피를 제의 합니다.
당시 러시아로 도망가서 함께 살자고 제의한 것이죠
물론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이런 이야기 거리가 생기기 않았겠지만
여기서 여러 사람들의 말이 갈립니다.


백석 시인이 먼저 러시아로 가서 자리를 잡고 연인을 불렀는데
기생의 신분으로 수많은 방탕한 남자들의 허언에 시달렸던 김영한이 백석을 믿지 못하고 결국
따라가지 않아서 헤어졌다는 설 도 있고
김영한이 연인인 백석의 장래를 위해서 백석의 청을 거절하고 백석 시인이 홀로 떠났다는 설 도 있습니다.
어느것이 정답인지는 모릅니다. 저는 뭐 그런 사연들을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아무튼 그 이후로 백석시인은 러시아를 거쳐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 후에 6.25 전쟁이 터지면서
둘은 영원히 재회하지 못하게 됐다는 군요




그 후에 성북동에서 대원각 이라는 이름의 요정을 운영하면서 많은 재산을 모았던 김영한은
법정스님과 인연이 닿아서 그 대원각을 통째로 법정스님에게 맡기게 되고
법정스님은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지어주고 대원각을 허문 자리에 김영한의 법명을 딴
길상사 라는 사찰을 지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평생을 혼자 살다가 돌아가신 김영한 여사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모은 이 수많은 재산은 그가 남긴 시 한줄 보다도 값어치가 없었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돌아가셨다는 군요


'그런데 어쩌라고 그럴거면 진즉에 그사람을 따라갈 것이지...'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김영한 여사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한마디가 후회일까 아니면 미련일까 생각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후회와 미련이 뭐가다르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후회란 지나간 잘못에 대한 나중에 누우친다는 의미지요
곧 잘못을 저지른 후에야 할 수 있는게 후회입니다.
하지만 미련이란 잘못한것은 아니지만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니까요
뭐 둘다 같다고 생각한다면 같을 수도 있는 말이겠지요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김영한은 결과적으로 백석 시인의 구애를 거절했지요
그 거절이 혹시 더 좋은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기생이라는 직업 때문에 생긴 남자들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버림받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일수도 있겠지요
또 정말 연인 백석의 장래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론은 김영한은 백석 시인이 내민 손을 뿌리치고 말았지요


그때의 김영한은 젊고 아름답고 앞으로 얻을 수 있는것들이 많았지요


그러다가 많은 재산을 모으고 그 댓가로 나이를 먹고
더이상 재산이 필요 없어진 김영한 여사는 그 재산을 사회에 대부분 되돌려 주고 나서
백석 시인의 시 한구절이 자신이 모았던 그 많은 재산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는 말을 하지요


과연 젊어서 아직 돈이 필요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때에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햇었느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김영한 여사는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 군요


다만 생각을 해 보건데


후회를 하거나 혹은 미련을 가지거나


그것들은 다 그럴 때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늙어서 기력도 떨어지고 당연히 건강도 안 좋아졌을 것이고
더이상 좋은 옷이나 맛있는 음식도 필요 없어지고
주위에 사랑을 해 주거나 사람을 받을 사람이 남지 않았을 때
자신의 생애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줬던 백석이라는 남자가 남긴
한마디 한마디가 그많은 재산들 보다 더 의미있는 기억으로 여겨졌을수도 있을테니
그때의 김영한 여사에게는 백석과의 이별이 후회이거나 혹은 미련일수도 있겠지요


아니 정확하게는 그 전부터 후회나 미련이 있었겠지만
그때의 김영한 여사에게 그것이 가슴에 시릴만큼 다가왔다고 하는것이 맞겠군요


무엇인가 후회를 할만한 일이나 혹은 미련을 가질만한 일 을 한 후에
남은 평생 동안 그 기억을 가지고 살게 되겠지만
그 남은 평생 사는동안 내내 후회나 미련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슴이 시릴만큼 느끼게 되는 때가 찾아 온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때 라는 것은
늘 그런것처럼 이미 지나서 되돌릴 수 없을 때라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후회 혹은 미련이라는 말을 할때가 되면
그말을 들은 사람은 이렇게 말 하겠지요
"왜 이제?"


그것은 지금이 그 때가 된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미 늦어버려서 아무것도 되돌릴수 없겠지만
그래도 늦은 후회라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하는 사람이 낫겠지요
다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그 말을 듣고 그동안이 서운함이 조금이나마 사라질지
아니면 아무것도 되돌릴수 없는 그 때에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이 더 화를 돋울지는 모르겠군요


저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조금 심했나... 싶은 순간들이 몇번 있었습니다.
과연 세월이 조금 더 흐른후에 그것이 후회나 혹은 미련으로 느껴질지는 아직은 모르겠군요


그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일이니 미리 서둘 필요는 없을것 같군요
물론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각오를 해야 하는 일 이겠지요










PS:그런데
     김영한 여사는 평생을 혼자 지내셨는데
     백석 시인은 그 후로 결혼을 3번이나 하셨다는 군요
     해피엔딩 이거나 아니면 새드엔딩 이거나...
    
    



2014년 12월 25일 목요일

진짜 스팽키(SPANKEE)?

가끔 커뮤니티 챗방 같은 곳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다
특히나 스팽킹(SPANKING)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성향이 스팽키(SPANKEE)라는 분들과 이야기를 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스팽키(SPANKEE)라는 성향이 정말 여러번의 플 이나
디엣(DS)관계를 거쳐서 스팽키(SPANKEE)라는 성향을 발견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사실 에셈(SM)을 시작하시면서 소프트한 스팽킹(SPANKING)외에 다른 경험은 없이
그 경험만을 가지고 본인이 스팽키(SPANKEE)라고 말씀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실 커(KER)이든 키(KEE)이든 새디(SADI)나 매저(MASO)나 돔(DOM) 혹은 섭(SUB) 이거나
가장 처음에 현실적으로 접하는 플이 바로 스팽 이겠지요 아마도


그리고 특히나 펨(FEM)분들 중에는
그런 상황에서 불가피한 성(性)적인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스팽키(SPANKEE)라는
단순한 성향으로 자부하시는 분 들도 의외로 많으시더군요


처음 만나는 파트너와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피하고 싶은 경우도 있겠지만
다른 플레이(PLAY)까지 가능한 파트너로 발전하거나 혹은 디엣(DS)으로 발전할수도 있는
파트너를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성(性)적인 접촉만은 피하고 싶거나
혹은 그런 관계를 갖더라도 일단 충분한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피하고 싶은 생각에
키(KEE)라는 성향으로 자신을 표현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생각을 해 보면
예전에 정말 스스로 마조(MASO)를 자처하거나 키(KEE)를 자처하시는 분들은
일체의 성(性)적인 접촉에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반대인 새디(SADI)나 커(KER)분들도 마찬가지 였죠
다만 그것이 남녀간의 성(性) 적인 접촉이 주는 느낌이 없었기 때문인 분들도 계셨고
에셈(SM)파트너 외의 남편,아내 혹은 애인들에 대한 죄책감 같은 심리적인 원인을 포함한
다른 이유들도 있었던건 같습니다.




스팽키(SPANKEE)라는 성향은 맞는 역할을 하는 에세머(SMER)인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스팽키(SPANKEE)라고 해서 다 같은 스팽키(SPANKEE)는 아닙니다.
어떤 키(KEE)는 맞기 직전의 긴장되는 분위기에 더 반응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키(KEE)는 맞는 순간순간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맞는 순간 보다도 맞고 난 후에 그 부위를 세게 만져주는
2차적인 느낌을 더 좋아하는 키(KEE)도 있었고
맞을때 피부에 전해지는 느낌 보다는 그 순간에 이를 악물고 등골에
식은땀이 나면서 머리속이 하예지는 느낌이 좋다는 키(KEE)도 있었습니다.


이 많은 느낌들 중에서 한가지를 콕 찍어서 이것이 키(KEE)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키(KEE)란 맞는 역할을 하면서 그것에 만족하는 에세머(SMER)의 유형이고
커(KER)란 그 반대의 때리는 역할을 하면서 그것에 만족하는 에세머(SMER) 이겠지요
그 만족감을 주고 또 느끼는 원인은 각자 다 다르겠지요
물론 같을수도 있겠지만요




가끔 진성 혹은 오리지널 커(KER) 혹은 키(KEE)를 자처하시는 분들을 보게됩니다.
그런분들은 오직 스팽킹(SPANKING)이 좋은 분들 이겠지요
스팽 외에는 다른부분들은 돌아보지 않는 분들 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분들 외에도 다른 이유로 인해서 스팽커(SPANKER) 나 혹은 스팽키(SPANKEE)를
자처하시는 에세머(SMER)분들도 많은것 같습니다.


하긴 이유가 중요한것은 아니겠지요
전에도 이야기 한것처럼
에셈(SM)이 삶의 전부가 될수는 없으니까요
현재 내가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딱 맞는 만큼 즐기는 것이 에셈(SM)이겠지요
그런 상황이 커(KER)이거나 키(KEE)이거나 혹은 마조(MASO) 새디(SADI)
돔(DOM)과 섭(SUB) 그리고 아주 드믈지만 마스터나 슬레이브 같은 성향을
결정하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을 하면 성향이라는 것은 단순한 성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향과 자신의 현실적인 상황을 더해서 결정된다는 것이 맞을것 같군요
또 그것에 만족감을 느낀다면 에셈(SM)이라는 것이 삶에 선물이 되겠지만
그것에 만족을 못 하고 현실을 무시한 성향만을 따지는 에셈(SM)이라면
수없이 많은 에세머(SMER)들이 입에 회자 되는 상처 혹은 저주가 되겠지요




다만 에세머(SMER)나 바닐라들이나 자신이 정한 바 그 선을 지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이겠지요 이미 다들 아시겠 지만요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한계를 넘지 마세요

데이빗 캐러딘 이라는 이름의 배우를 기억하시는 분 많으시겠죠
1970년대 미드 쿵푸 시리즈로 큰 인기를  었었 던 배우입니다.







그당시의 데이빗 캐러딘 입니다. 30대 였지만 나름 풋풋 하군요


원래 이 미드 쿵푸 시리즈는 불멸의 액션 스타인 이소룡이 주연을 노렸다는 군요
그리고 거의 성사단계에 있었는데 난데 없이 주연이 바뀌어서 데이빗 캐러딘의 출세작이 됐답니다.
그 자세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요
또 이소룡과 캐러딘 두명의 배우가 다 사망한 지금 시점에서 이야기 할 필요도 없겠군요

 이 쿵푸라는 드라마 이후 데이빗 캐러딘은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성공한 시리즈 물의 주연이었던 배우는 그 시리즈 물에서 보여준 캐릭터가 고착화 돼서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기가 힘들다는 속설처럼 그저 그런 배우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쿵푸2 시리즈의 주연을 맡았지만 예전같은 인기를 얻기는 힘들었죠


그러다가 "킬빌"이라는 영화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킬빌에 출연할 당시의 모습이군요 무려 30여년의 시간차이가 있으니 모습이 많이 변했군요




그런데 지금 이 데이빌 캐러딘 이라는 배우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사람이 2009년에 태국의 모 호텔에서 목을 매 죽은채로 발견 됐습니다.
당시에 자살을 할 이유가 없어서 타살설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만
타살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해서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아는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요
데이빗 캐러딘이 혼자서 브레스(Breath)를 즐기다가 사고로 교사(絞死) 했다는 것이지요
즉, 데이빗 캐러딘은 스스로 목을 맨 상태에서 흥분을 즐기다가 사고로 사망한 것이지요


캐러딘 말고도
몇년 전 쯤에 독일에서 어떤 남자가 자동으로 접혀지는 전동침대에 누워서
밧줄로 목을 감고 침대의 전동 리모콘을 손에 들고 침대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브레스(Breath)를
즐기다가 실수로 리모컨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교사(絞死) 하는 사고가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수치는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상당히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이런 사고로 사망하고 있다고 하는 군요


목을 졸리면서 숨이 멎을때의 그 느낌을 저는 모릅니다.
다만 예전에 제가 데리고 있었던 강아지 하나가 브레쓰에 특히 민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날 집에서 혼자 옷걸이를 이용해서 브레쓰를 해도 되냐고 물어보기에
쫓아가서 기절할 때까지 맴매를 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브레쓰는 금지 했지만요




디엣(DS)을 맺은 주종간에나 혹은 플파(Play Partner)사이에
플레이 라는 것을 하다 보면
가끔 어떤 정해진 한계를 한번 넘어서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 시작할때는 그렇게 자극적이고 흥분을 주던 것들이
늘 하는 플레이, 늘 마주하는 상황 들로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때가 오지요


돔(DOM)이나 새디(SADI)들이 가학을 하는 상황에서
본인들이 그 플레이(PLAY)에 식상해 지거나
혹은
피학을 당하는 섭(SUB)이나 마조(MASO)들의 반응이 처음과는 다르게
약해진다고 생각 될때나
아니면 다른 이유들 때문에라도
한번쯤은 한계를 넘어서 보고픈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도 새디(SADI)나 돔(DOM) 분들이라면 그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 보셨을 것 같고
저는 커(KER)로써 그런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군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계를 넘는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구지 위에서 이야기 한 브레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피학의 대상자가 아무리 성향이 강 하더라도
사람의 몸 이라는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가학과 피학을 주고 받는 그 상황에서 피학의 대상자 들이
그 분위기와 그 흥분에 못 이겨 그것을 요구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늘 그렇듯이 정신이 피곤하게 스스로를 컨트롤 하고 그 상황 이후를 생각할 사람은
돔(DOM)을 비롯한 가학의 주체들 이어야 겠지요


혹시 만약에라도
그 시간, 그 장소, 그 상황의 분위기에 이끌려서 피학의 대상자 들이
하는 요구에 휩쓸리게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가학의 주체로서 자격을 의심받게 될 것입니다.


에셈(SM)이라는 것이 삶의 전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셈(SM)이라는 것은 삶의 일부이고 그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가 되어야 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지배와 가학하는 자의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이겠지요


에세머(SMER)로 살면서 몇몇 가까이 해서는 안될 인간들의 유형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중에 가장 가까이 해서는 안될 인간들이
바로 에셈(SM)이 인생의 전부인 것 처럼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이겠지요


이 사람들은 에세머(SMER)들이 흔히 부르는 변바라는 유형들 보다도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에세머(SMER)란 변바들 과는 달리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말들을 하기 전에
에세머(SMER)등 변바든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이겠지요


안전제일(安全第一) 이라는 1970-80년대 산업현장에 붙어있던 말이 생각 나는군요
아마 지금도 그렇게 붙어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014년 12월 20일 토요일

웃고 떠드는 이유

가끔 아니 요즘은 자주라고 해야겠군요
잦은 모임으로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평소에 자주 만나던 사람들은 그대로 좋고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하던 사람들을 만난다는것은 더 좋지요


그런데 그렇게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카톡을 비롯한 메신저 알림음이 들려옵니다.
눈 앞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술잔을 부딛치던 사람들이 순간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통해 온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지요
순간 대화가 끊어지고 시선을 둘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을 하고 다시 시선을 마주칠 때까지
조금은 뻘쭘한 상황이 생깁니다.
또 시선을 다시 마주치게 되고 다시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해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헷갈리기도 하고
필 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흥 이라고 해야할까요
좀 전과 같은 그런 충만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말 심한 경우에는 눈 앞에 앉은 사람이나 혹은 옆에 앉은 사람이
대화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톡 에만 열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체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때는 먼저 말을 걸 때까지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는것이 속 편하기도 합니다.


소통(疏通)을 위해서 만든 도구 때문에 오히려 소통(疏通)에 장애가 생기는 경우라고 하겠군요


최근에는 밴드 라는 서비스에 가입했는데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냈던 친구들이나 동료들 을 비롯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서로 개인적인 연락처를 주고 받아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 보다는
밴드 게시판에 누군가 글을 올리면 그 글에 누군가 댓글을 달고
그 댓글에 댓글을 달고 또 달면서
댓글에 댓글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지요


저도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친구들 밴드에 가입을 해 있지만
한번 댓글을 달기 시작하면 그 밴드의 댓글 알림음이
전화벨 소리처럼 쉬지 않고 울려대서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특히나 사내녀석들이 그동안 여자애들 보다 많은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것처럼 왕 수다를 떨어대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설마 그 친구들이 직장에서나 집 에서나
직장동료들이나 아내 혹은 자기 애들 앞에서 그렇게 왕수다를 떨지는 않겠지요


걔중에는 평소에 정말 수다라고는 모르는 무거운 친구들도 있겠지요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자신들의 지켜야 할 위치가 있을테니까요


다만 그 친구들 에게도 자신들이 하는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이익이나 체면을 결부시키지 않았던 순진했던 초딩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 시절을 함께 살았던 친구들 앞에서 그시절을 생각하면서
체면 따위 따지지 않는 왕 수다쟁이로 돌변하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수다를 두고 소통이 아닌 그저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과 같은
말 의 배설작용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말에는 그사람의 생각과 사상이 담겨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사색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색이 들어가 있지 않은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생각을 하다보니
전에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이라는 말에 대한 글을 쓴 기억이 났습니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과정들 즉 순환이 잘 이루어 지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었죠


사람의 몸에 무언가 들어오고 흡수되고 나가고 다시 들어오는 그 과정들이
원만하게 이루어 지면 몸에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겠죠






어떤 의사들은 말 합니다.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오래 사는 이유는 남자들 보다 눈물이 많기 때문이라고요
그 눈물이란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슬픈일을 더 많이 겪는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 생겼을때 그것을 억누르게 강요받는 남자들 보다 솔직하게
눈물을 통해서 쏟아내는 여자들이 감정적 으로도 신체적 으로도 더 건강해 진다는 뜻 이지요


그렇게 쌓이다가 막힌 감정의 앙금들을 쏟아내게 해 주는 눈물이라는 생리작용이
감정 뿐 아니라 몸까지 건강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생각해 보면
소통이라는 말의 뜻은
서로의 의사를 막힘 없이 전달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구지 그 소통의 대상이 서로의 의사일 필요는 없을것 같군요


사람의 몸에 피가 흐르는 혈관이 있고 그 혈관을 따라서 산소를 비롯한 몸에 필요한
물질들이 흘러 다니는 것처럼
인간의 몸 속에는 감정이 흘러다니는 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혈관이 막히면 병이 나는것 처럼 그 감정의 관도 막히면 병이 나겠지요


가끔은 눈물이나 혹은 사람들이 의미없다고 폄하하는 그런 수다들이
그 감정의 관을 청소해 병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겠지요

그것 역시 우리가 이시대에서 소통하며 살아가는 방법의 한가지 이겠지요


혹 그런 감정의 관을 막히게 하는 앙금들을 욕불이라는 말로 대신 하는 분들도 계시겠군요






다만
언제나 그렇듯이
누구와 함께냐 라는 문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로군요



























2014년 12월 18일 목요일

밀행제일(密行第一)






예전에 어떤 펨 동생이 이런 질문을 한 이 있었습니다.
-섭(SUB) 성향이 아닌 돔(DOM) 성향 인데-
모 커뮤니티에서 디엣(DS)을 맺게 됐는데
운영자 분이 섭(SUB)과 함께 모임에 한번 나오라고 자꾸 쪽지를 보내는데 어쩌면 좋겠느냐고요


밀행제일(密行第一)이 가장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밀행제일(密行第一)이란 부처님의 10번째 제자인 라훌라를 지칭하는 별호 이기도 합니다.
라훌라 라는 말은 인도 말인데 해석을 하자면 장애물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아드님 이름이기도 하지요


물론 부처님이 직접 아들의 이름을 장애물 이라고 짓지는 않았습니다.
부처님이 아들 이름이 장애물 이라는 뜻인 된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해서 불문에 귀의하기 이전에 왕국의 왕자님 이셨고 이름은 싯다르타 였는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결혼까지  하신 기혼자 셨지요
그렇게 잘 사시다가 어느날 인간들의 삶과 죽음 고통과 번뇌에 눈을 뜨시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느라 고심하시다가 출가를 하시게 됐는데


살을 맞대고 살던 아내에게 "이제 나는 출가를 해서 중이 될 것이니 당신 혼자서 잘 살아 보시오"라는
말을 하신다는 것이 어찌 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아무튼 부처님이 수도를 하기 위해서 왕자라는 신분과 아내와 아버지를 버리고
성문을 나서는데 시종이 달려와서 아내인 아쇼다라 님이 지금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 말을 들은 싯다르타는 잠시 머뭇거리면서 "라훌라(장애물)가 생겼구나"하고 탄식을 하셨답니다.
즉 모든것을 다 버리려고 했는데 거기에 한가지 장애물이 생겼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결국은 성문을 나서고 수도를 해서 깨닮음을 얻은 후에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부처라는 말은 깨닳은 사람이라는 뜻 이라는군요-
그 말을 들은 싯다르타의 아내 아쇼다라는 눈물을 흘리면서 갓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라훌라 라고 지었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아들 이름은 라훌라(장애물)이 됐다는 군요


사실 모든 부모에게 모든 자식들은 라훌라(장애물) 겠지요




부처님은 물론 훌륭하시고 위대하신 분이 맞습니다.
모든 인간들의 고통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느라 스스로 부귀영화를 버리신 분이니까요
하지만 어찌 보면 참 독 하신 분 이지요
-장부는 독 해야 한다는 옛말이 생각 나는군요-


왕자라는 지위에서 따라오는 부귀영화, 그리고 아버지 왕의 기대와 받았던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와 그 자식까지 저와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다 버리게 만들고 그 에 대한 댓가로 깨닳음을 었은 것이죠
그리고 그 깨닳음은 부처님 개인을 위한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과연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면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만약에 얻는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잘 먹고 잘 사는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깨닳음을 위해서
그 모든것들을 다 버릴 수 있을까? 생각 하지만


그것이 바로 평범함과 위대함의 차이겠지요
그 깨닳음이란 먼저 얻기를 작정하고 버려서는 얻을 수 있는것이 아니니까요
먼저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버린다는 것은 이윤을 쫒는
장사꾼이나 다를바가 없을 테니까요


나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사람을 위해서
대가 없이 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바로 위대함과 평범함의 차이라고 말 할수 있겠군요


또 버릴 수 있어야 얻을 수 있다는 말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편적인 삶의 이치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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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외적으로 버리지 않고 원래부터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사람들도 가진것들을 쓰기 위해서 무언가를 계속 버려야 한다는 것은 피할수 없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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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니 이야기가 조금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군요 이것이 저의 한계 이기도 합니다만
구지 쓴 글을 지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해 하시길...



 
아무튼 시간이 흘러서  
아들(라훌라)이 어느정도 큰 다음에 부처님과 아내인 아쇼다라가 재회했다는 군요
아쇼다라가 가정을 버리고 떠난 남편이 너무 얄미워서 아들에게 아버지 에게 가서
집을 나가서 얻은 보물이 무었인지 달라고 시켰다는 군요
그런데 아들을 본 부처님은 한술 더 떠서 그 아들까지 출가를 시켜서 제자로 삼았답니다.
자식에게 물려줄 보물이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자신이 깨닳은 바 였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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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내에게 너무 심한 남편이로군요 남편 없이 자식에게 의지하는 아내에게 그 아들까지 뺐어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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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이 부처님의 10명 제자 중 10번째인 밀행제일(密行第一) 라훌라 라는 군요
부처님의 제자 중에 지혜가 많다는 뜻을 가진 이름도 있고 아는 것이 많다는 이름도 있고
신통력이 뛰어나다는 뜻을 가진 이름도 있지만
이  밀행제일(密行第一) 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남들이 모르게 은밀하게 배우고 행하는 것을 가장 잘 한다는 뜻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에세머(SMER)로 살아간다는 건 밀행제일(密行第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히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얻으면 거기에 감사하고 다른데 눈을 돌려서는 안되겠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누군가와 디엣(DS)을 맺거나 누군가와 플레이(PLAY)를 하거나 그런부분들을
자랑하고 커뮤니티의 모임등에 나와서 자랑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들이 계십니다.


에셈 커뮤니티 운영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런부분들이 필요한 수도 있겠지요
에셈 커뮤니티를 활성화 시키는 방법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이 커뮤니티에서 만남이 이루어 진 사례가 있고
또 그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 이니까요


그렇게 홍보만 된다면 에셈(SM)커뮤니티란 저절로 굴러가게 돼 있겠지요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회원들이 커뮤니티에 들어와서
디엣(DS)을 맺은 다음 그저 잠수를 해서 가입자 인원수만 잡아먹는 사람들 이라고 하더군요
바람직한 결과를 얻었으면 선례를 남겨서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그냥 잠수를 타다가 또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회원들이
운영자들의 눈에 좋게 보일리가 없겠지요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식으로 원색적으로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기를 바라시는 운영자 분 들이나
운영자들의 바램처럼 사이트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나
조용히 하고싶은 것만 하시면서 사는 분들이나
각자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면서 에셈(SM)을 즐기는 것 뿐이니
다른사람의 눈으로 평가할 이유는 없을듯 합니다.


다만 저는 밀행제일(密行第一)이 가장 좋다고 생각할 따름이지요








PS: 그런데 솔직히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소리를 들으면 저도 열은 받을것 같군요...
    





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처지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는 말 입니다.


얼마전에 퇴근을 해서 급하게 어디를 가는 중 이었는데
사무실에 휴대폰을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택시를 잡아서 기사에게
사무실을 들렀다가 다시 지하철 역 까지 가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 보다 나이가 조금 어릴 듯 한 택시기사가 정색을 하더군요
원래 택시는 한번 정해진 목적지만 가는 거지 중간에 어디를 들르지 않는다고요


저도 조금 당황했습니다.
아니 뭐 잠깐 사무실에 들러서 휴대폰만 가지고 목적지를 가자는 건데 그것이 어려운 일인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규정이라도 있는 것인가 하고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어차피 택시 미터기는 켜 놓을거고 잠시 섰다가 가 주는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요


그러자 택시기사가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도로상에 불법 정차를 하기도 어렵고 요즘은 웬만한 차 들에 다 블랙박스가 장착돼 있어서
사진 찍히면 벌금을 낼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렇다면 나하고 같이 내 사무실 주차장에 차를 정차해 놓고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
사무실 주차장 이니까 사진 찍을 사람도 없고 단속할 사람도 없으니 괜찮지 않겠느냐 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안색이 안좋아 지더군요 손님이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니 거절은 못하고 잠시 사무실에 들러서
휴대폰을 가지고 나오기는 했지만


지하철 역 까지 가는 내내
"내가 손님 때문에 가기는 했지만 입장을 한번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손님 같으면 어디 들러서 정차를 해 놓고 기다리다가 가고 싶겠느냐고
한번도 아니고 세번 네번을 계속해서 똑 같은 말을 하더군요


속으로
이런 ×× 라는 소리가 나왔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고
아무말 않고 요금을 지불하고 수고하셨다는 치하도 하지 않고 그냥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부터 며칠 동안 생각을 했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 보려고 노력을 했지요
그 결과는
아무리 내가 입장바꿔서 택시기사가 된다 하더라도 손님이 정차 해 놓을 주차장 까지 제공하면서
잠깐 들렀다 가자는 것이 왜 기분이 나쁜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나쁜건 그렇다 치더라도  손님에게 구지 그런소리 까지 지껄여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 택시기사에게 잠시 정차를 했다가 당했던 안 좋은 기억이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라는 선 에서는 도저히 지금도 이해를 못 하겠군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는 것 정말 어려운 일 입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 한다면 불가능 한 일 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사람이 아니니까요 그저 서로 사회라는 틀 안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사이일 뿐이겠지요
그것이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가 필요한 이유 이기도 하겠지만요






살면서
펨(FEM)들로 부터 맬(MALE)들은 펨(FEM)들 마음을 모른다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바닐라 들이나 에세머(SMER)들이나 이부분 에서 만큼은 공통적으로 듣는 소리일 것 같군요


그렇다면 펨(FEM)분들은 맬(MALE)들의 마음을 아신다고 생각하는지 반문 해 보고 싶군요


아신다고 대답하시는 분도 계실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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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원초적이고,밝힘증 이라는 세가지 단어를 대입해서 생각한다면 대충 맞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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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외로 맬(MALE)들 에게도 복잡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펨(FEM)들 처럼 그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말을 못 하면서 살 뿐이지요


여지껏 에세머(SMER)로 살아오면서
펨키(FEM KEE),펨 마조(FEM MASO),펨섭(FEM SUB) 들의 펨(FEM)이라는 성(性) 적인 정체성이나
피학을 원하는 에세머(SMER)로서의 성향적 정체성을 이해하려고 나름은 애를 쓰고 살았지만
입장과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 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비록 합의라는 이름으로 지배자라는 포지션에서 피지배자 라는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한 가학의 종류들을 생각해 보면 그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 일까 하고요


결국 제가 그런 정체성 이나 그런 성향들을 조금은 이해 한다고 말 할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처지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는 어려운 일이겠지요 


어쩌면 그것은 불가능 한것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런 펨(FEM)들,그런 피학욕구자들의 성향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그런 성(性)적인 정체성과 그런 피학욕구를 함께 가진 한 사람에 대한 이해 까지는 가능 할것 같군요
그것이 몇번인가의 인연을 가능하게 했던 이유일 테니까요


또 그것이 바라는 에셈(SM)이고, 바라는 인간관계 이니까요




아무튼 어렵습니다. 에세머(SMER)들의 성향을 이해한다는 것이요
그것이 좋아하는 일 이라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이지요





2014년 12월 13일 토요일

갑(甲)질이 하고싶은 사람들...


얼마전에 글을 올리면서
이런 내용의 통계를 인용 한적이 있었습니다.


꽤 오래전의 통계이기는 하지만
미국 직장 내에서 직장 상사로 부터 성 적인 학대를 받았다는 신고 건수 중에
남자 직장 상사가 여자 부하직원을 학대한 횟수가 95라면
반대로 여자 직장 상사가 남자 부하직원을 학대한 횟수가 5 에 불과한데
정말 재미있는 숨어있는 다른 통계는
미국 에서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전체 직장중에서 권력을 가지고 부하직원에게
성 적인 희롱과 학대를 할 위치에 있는 남자와 여자의 총 비율도 95 대 5 라는 것이죠



직장내에서 성적인 희롱과 학대를 일삼는 사람들의 비율은
눈에 보이는 것은 95 대 5 이지만 실제로는 남자나 여자나 성적인 희롱과 학대를 하는 비유은
다르지 않고 똑 같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또한 직장 내에서 성적인 희롱과 학대를 하는 이윤는 상대방에게
성 적인 호기심을 느껴서 라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우월한 권력을 부하직원에게 휘둘러 보고 싶어서 라는것이 중요 이유라는 것이죠
동성간에 권력을 휘두른 다면 그냥 성질 더러운 × 라는 욕을 먹거나
싸이코 라는 뒷담화를 듣기 바쁘겠지만
이성간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상대방의 성 적인 정체성을 이용하는 것 이라서
성 적인 추행과 학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의미겠지요


즉 맬(MALE)이나 펨(FEM)이나 이른 바 말하는 갑(甲) 질을 해보고 싶어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요즘 드라마 미생을 가끔 보고 있는데
그 드라마의 주된 내용도 층층이 계급제로 이루어진 회사 내에서 불합리하고 탐욕스러운 상사에게
이른 바 을(乙)의 위치, 아니 을(乙)도 못되는 병(丙)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아니,재미라는 말 에는 어폐가 있고 충분한 공감을 주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군요
저 역시 한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모두들 아시겠지만
최근에는 모 항공사의 오너 일가족의 이른 바 슈퍼 갑(甲) 질 이 화제가 되고 있군요


따지고 보면 이것은 그 항공사 부사장의 인간성 자체도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우리 사회가 지닌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태어나서 기저귀를 차고 살아갈 때부터 저절로 슈퍼 갑(甲)이 된 사람이지요
그리고 자라면서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 사람을 슈퍼 갑(甲)으로 떠 받들어 댔으니
자기가 왜 남들에게 갑(甲)의 대접을 받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그저 그런 대접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사람 이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타고나면서 부터 갑(甲)이 된 사람들이야 보고 들은것이 그것 뿐이니 그렇다 치지만
하찮은 신분에서 을(乙)의 위치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나중에 갑(甲)의 위치에 서게 되면 오히려 타고난 갑(甲) 들 보다 더 갑(甲) 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른바 꼴불견 인데 마치 을(乙) 이었던 시절을 보상 받고 싶어하기라도 하듯이 꼴갑을 떠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셈(SM)이라는 것에 빠져서 살면서 가끔 모임을 나가거나 챗을 하다가
돔(DOM)성향자 들과 간간히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 중에 정말 타고난 성향을 주체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저 독특한 성 적인 만족을 위해서 에셈(SM)에 발을 들이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가끔은
자신이 처 해있는 현재 사회적 위치가 낮고 비루해서 이른 바 을(乙)의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갑(甲)이 돼 보고 싶어서 돔(DOM) 역할에 빠진다는 분 들도 계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갑(甲)으로 살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 없이 을(乙)의 입장이 돼서 살아가고 있는데
여기 에세머(SMER)들 중에는 스스로 을(乙)이 되려는 분 들이 계시지요
아니 을(乙)이 되고 싶다기 보다는 을(乙)의 역할을 바라시는 분들 이겠지요
을(乙)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 을(乙)이 되는 사람들은 없을테니까요
다만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분들이겠지요


요 며칠 사이에
TV와 신문 뉴스를 접 하면서
남루한 현실에서 갑(甲)이 한번 돼 보고 싶은 욕구에 대해서 생각 해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남루한 현실에서 을(乙)의 위치에서 벗어나 갑(甲)이 돼 보고 싶다는 욕구는
에셈(SM)적인 성향을 깨닫는 동기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닐라 사회에서의 을(乙) 이란 만족과 행복을 모르는 역할 이지만
에셈머(SMER)들 사이에서의 섭(SUB)이란 그 역할로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존재들 이지요
그 차이는 바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배려의 있고 없음 때문이겠지요


에세머(SMER)들 간의 돔(DOM)과 섭(SUB) 사이에서 돕(DOM)이 섭(SUB)에게 하는 것 들은
일반인들 사이의 갑(甲)과 을(乙) 사이에서 갑(甲)이 을(乙)에게 하는 것 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요
-구지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테니까요-
그럼에도 그것이 만족감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이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이겠지요


갑(甲)질을 해 보고 싶다는 욕구는 당연합니다.
사회에서 갑(甲) 에게 을(乙)의 역할을 강요받는 사람들도
병(丙) 들에게는 자신이 갑(甲)의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것이 당연하겠지요
누군가에게 대우를 받고 공경을 받고 내 앞에서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그 인사를 받는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다만 에세머(SMER)들 사이에서의 갑(甲) 질이란
아니 갑(甲) 질이라고 표현해서는 안되겠군요 지배자의 역할이란
바닐라 사회에서의 갑(甲) 과는 달리 끝없는 피지배자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니까요


갑(甲)질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에셈(SM)적인 성향을 깨 닫는것은 있을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되겠지요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것은 곧 에셈 사이트에서 접 할수 있는
수많은 상처의 이유가 될 테니까요








PS:그런데 물론 갑(甲)질에 빠져사는 인간들도 많겟지만
    갑(甲)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을(乙)들 에게 그 위치를 내세우지 않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것이 겸손(謙遜) 이라는 것일테고 그것이 더욱 더 스스로를 빛나게 하는 일이니까요
 
 
 
 
 
 
 
 
 

2014년 12월 11일 목요일

미련을 갖는다는 것은 미련한 짓이겠지요

꽤 오래전에
모 사이트의 익명게시판에 어떤 펨(FEM) 이 글을 올린적이 있었습니다.


내용을 간추리자면
"나는 너와 인연을 맺을 생각이 없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말 할수가 없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내가 지금 이 시점에 너와 인연을 맺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익명게시판에 밝혀 두고 싶다. 나중에 내가 너를 속였다고 오해 하지 않도록"
뭐 이런 내용 이었습니다.


많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다는 내용도 있었고
글쓴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저 다시 한번 생각 해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지금 솔직히 이야기 해 주는것이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그사람을 위하는 일이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솔직히 이야기 해서 저는 조금 심한 소리를 했었지요


그리고 글 쓴이가 글 쓴 사람의 사정도 모르면서 그런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반박 글을 쓰고
거기다가 저는 다시 조금더 심한 소리를 보태서 썼습니다.


"내가 당신 사정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니까
 저번에 당신이 쓴 글을 보고는 짜증이 났다
 무슨 동정심도 아니고 배려도 아니고 싫다면 싫다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오히려 그사람에게 예의를 지키고 그사람을 배려하는 일이다.
 그 사람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고 다른 사람, 다른 인연을 기다릴 수 있도록...


 그런데 오늘 글을 보면서 이번에는 짜증이 아니라 성질이 난다.
 당신 사정이 어떤지 모르는 사람한테 당신 사정을 이해해 달라는 말이냐?
 당신 사정을 밝히던가
 그것을 밝히기 싫다면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공개 게시판에 글을 쓰지 말고
 당신과 나중에 그사람 만이 볼 수 있도록 비밀번호를 지정하는 비밀글을 쓸 것이지
 비록 익명이라도 버젓이 공개되는 게시판에 글을 써 놓고서 당신이 누군지도
 어떤 사정인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당신을 두둔하는 댓글만 달아주기를 바란것이냐"


며칠 후에 어떻게 알았는지 메일이 왔고
사이트를 탈퇴하고 에셈(SM)을 그만두겠다고 하더군요


속으로 웃었습니다.
에셈(SM)을 하거나 말거나 나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이런 메일을 보내나...


어차피 신분의 익명성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사이트 였으니 탈퇴를 하고 다시 가입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고 아니면 다른 사이트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 이겠지요
다만 에셈(SM) 사이트에 그런글을 쓴 것으로 봐서는 그 익명글을 썻던 펨(FEM)이 말하던
그 사람도 에세머(SMER) 였겠지요


이 일을 두고 그 펨(FEM)이 말했던 사정 이라는것이 대체 무엇일었을까
마음에 없는 사람에게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자신만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모를일 입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다고 아직도 생각합니다.
미련을 갖는다는 것은 미련한 짓 이지요
미련이라는 말 의 뜻 자체도 다 익히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아직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나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그 일들에 대해서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 배우지 못한 미련한 짓 이라는 뜻이겠지요


그 펨(FEM)이 이야기 하던 그 맬(MALE)-아마도 맬 이겠지요 펨은 아니겠지요-이나


익명게시판에 그 맬에게 너에게 가고싶지 않은데 나중에 너가 오해 할 까봐 여기
익명게시판에 나중에 너가 오해 할 까봐 지금 내 마음을 글로 남긴다고 햇던 그 펨(FEM)이나


그 펨(FEM)에게 안좋은 소리를 해 댔던 저나
모두 조금은 미련한 사람들 이겠지요
뭐 따지고 보면 세상에 미련하지 않은 사람들은 없겠지만요


하지만 생각을 하면 생각 할수록 입에서 이해가 안되는 것은 어쩔수가 없군요
그 맬이 그 펨을 마음에 두고 있는것은 분명한 사실 일것이지만
그 펨은 그 맬에게 마음이 없다는 뜻일텐데


익명게시판 따위에 그런 글을 한 줄 써서 남기고 그 이야기를 안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익명게시판에 글을 써 남기지 않았다면 그 맬을 속인것이고
글을 써서 남겼다면 그 맬을 속인것이 아니니 나중에 미안한 감정이 조금은 덜 할것이라는 걸까요


오히려 나중에 그 맬 분이 이미 오래전 부터 이미 그 펨이 자신에게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 좌절 하거나 분노하지 않을까요


저라면 오히려 더욱 더 짜증이 날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일 입니다. 그 두 사람을 저는 다 알지 못하니까요
그 결말이 정말 궁금하긴 하지만 알 수 없겠지요


다만 저의 소회(所懷)는 분명합니다. 
다른분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실 수도 있겠지만요


거절을 할때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거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바닐라들 간의 남녀 관계에서나 에세머(SMER)들 사이에서나 마찬가지 겠지요
상대방에게 쓸데없는 미련을 남겨주는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미련하게 만드는 짓 이라는 것을
오래전에 이미 배웠으니까요


















  
 

돔(DOM)들이 섭(SUB)들을 존중하는가...

에셈(SM)이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종종 이런 말을 들어왔습니다.
 
돔(DOM)이라고 섭(SUB)보다 인간이 잘나서 돔(DOM)이 된것이 아니다
그러니
항상 섭(SUB)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존중하라 는 말이었습니다.
 
그말을 처음 저한테 했던 사람은 맬돔(MALE DOM)이었지요
그리고 그 사람은 에셈(SM)이라는 것이 좀더 사회적 저변을 확대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입버릇 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자기는 주위 사람들한테 자기가 에세머(SMER)인 것을 구지 숨기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 이 나라에서 에세머(SMER)라는 것을 커밍아웃 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나요?
그러자 대답하기를
자기는 자기 아들이 에셈(SM)을 한다고 해도 말리지 않을것 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아들이 돔(DOM)이 아니라 섭(SUB) 성향이라고 해도 에셈(SM)에 발을 들이게 할 것이냐고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습니다.
나름 돔(DOM)생활을 오래 했으니 섭(SUB)이 그 포지션에서 하는 일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겠지요
 
자신은 돔(DOM)으로서 누구보다 하드하다고 자신 하면서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섭(SUB) 성향자들을 존중한다고 떠들어 댔지만
결국 그 존중이란 자신의 가족이 아닌 남에게만 한정되는 것이었지요
자신의 가족이라면 돔(DOM) 성향일때만 가능하다는 의미겠지요
자신의 아들이 섭(SUB)성향 이라는건 인정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입장을 바꿔서 저 라도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직 아들이나 딸이 없지만요-
과연 돔(DOM)이 아닌 섭(SUB)성향의 자식들에게 에셈(SM)이라는 거에 발을 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역시나 그건 어렵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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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생각입니다. 아닌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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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 말해서 그 존중이라는 말은
내가 주관적이 되지 않는 객관적이 될 수 있는 사람들
즉 남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었다는 것이죠
사실 남에게 만이라도 그런 존중을 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여기서 논쟁거리가 발생합니다.
디엣(DS)을 맺은 돔(DOM)이 섭(SUB)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애정과 관심이라는 것이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에서의 애정과 관심이라는 뜻인가?
진정 섭(SUB)을 아낀다면 섭(SUB)노릇을 시킬것이 아니라 에셈(SM)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돔(DOM)들은 합의 라는 말로 그 논쟁에 답을 합니다.
즉 미성년자만 아닌 성인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성향을 스스로 찾는것을
막을 이유도 없고 본인이 원하는 합의에 의한 것이므로 그것은 오히려
섭(SUB)에게 만족감을 주는 행위이고
나쁜 맬들 다수가 우글거리는 에셈(SM)현실에서 섭(SUB)에게 안전하게
에셈(SM)을 선물처럼 누리게 해 주는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라는 뜻이죠
 
맞는 말이기도 하고 저도 공감하는 바 이기도 합니다.
합의를 기본으로 해서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삼고
지배와 피지배 가학과 피학을 그린다면 좋은 일 이겠지요
섭이 섭(SUB)인 이유는 성향이 섭(SUB)이기 때문이지 인간 자체가 섭(SUB)은 아니니까요
 
혹시나 디엣(DS)을 처음 경험하시는 분들은 
정말 섭(SUB)을 아껴 주시기 바랍니다.
눈치를 보면서 맞춰주라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섭(SUB)을 아낀다는 말은 어찌 보면 제가 늘 하는 배려(配慮)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군요
그 배려(配慮)속에서 섭(SUB)을 지배하고 가학 하면서
본인의 만족과 섭(SUB)의 만족을 함께 얻는것이 가장 바람직한 디엣(DS)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절제력을 필요로 합니다.
번뇌의 시작이기도 하지요
 
 
 
 
 

2014년 12월 8일 월요일

갈등(葛藤)과 인연(因緣)에 대한 생각

어제 원증회고(怨憎會苦)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그 글을 읽으시고 문의를 하신것이 있어서
그 물어보신 바 에 대한 답변은 아니지만 생각 나는 바 가 있어서 포스팅을 해 봅니다.


갈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갈등(葛藤)이라는 말은 칡 葛, 등나무 藤 이니까
칡과 등나무라는 의미입니다.
속설인지 모르지만 칡이란 오른쪽으로 꼬이면서 자라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꼬이면서 자라기 때문에 칡과 등나무가
반대 방향으로 얽히면 좀처럼 풀리기 어렵다는 군요
그래서 서로의 생각이 달라서 좀처럼 풀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말 입니다.


연리지 라는 말도 있습니다.
연리지(連理枝)는 중국의 위대한 시인이신 백00 선생이 지은 시에 나오는 나무이지요
비익조(比翼鳥), 연리지(連理枝)
눈과 날개가 한쪽씩 밖에 없는 새가 비익조 인데 눈과 날개가 한쪽씩 밖에 없기때문에
반드시 두마리가 함께 붙어 다녀야 앞을 볼 수 있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전설적인 새 이고
뿌리는 서로 다르지만 가지가 한 뿌리에서 자란 나무처럼 서로 연결된 나무를 연리지(連理枝)라고 하는데
비익조(比翼鳥)나 연리지(連理枝)라는 말은 떨어질 수 없이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를 의미하지요
-연리지(連理枝)는 비익조(比翼鳥)와는 달리 종종 실제로 볼 수 있는 나무라는 군요
 과학적인 설명은 제가 잘 모르므로 할 수 없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다른 나무인데 가지가 붙어서 한 나무 처럼 보이는군요)




어제 원증회고(怨憎會苦)라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보기 싫지만 보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보기 싫어서 서로 보지 않고 산다면 고통이 생길 일이 없겠지요
원증회고(怨憎會苦)라는 말은 곧 갈등(葛藤)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엮여서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말 일 것이고 원증회고(怨憎會苦) 같은 고통의 원인이 곧 갈등(葛藤) 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연리지(連理枝) 처럼 서로 뿌리가 다르더라도 한몸 처럼 엮이는 관계도 있습니다.


갈등이나 연리지나 똑같이 서로 엮여가는 관계이지만
한쪽은 서로 엮이지만 원증회고(怨憎會苦) 같은 고통을 주는 관계이지만
다른 한쪽은 서로 뜨겁게 원해서 서로에게 사랑하는 감정과 기쁨을 주는 관계로군요




인연(因緣)이라는 말을 하면서
흔히 악연(惡緣)도 인연(因緣)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위에서 말한 원증회고(怨憎會苦)나 갈등(葛藤)같은 관계는 악연(惡緣)이긴 하겠지만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인연이라는 뜻이겠지요
최소한 내 주위에 그 사람들이 있으므로 해서 그런 고통을 겪는것이니까요
길을 가다가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나에게 고통이나 기쁨을 줄 일은 없으니까요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 즉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중에 정말 나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고 꼴 보기 싫어서 죽을것 같은 악연(惡緣)을 만나 얽혀서
갈등(葛藤)을 빚고 원증회고(怨憎會苦)같은 고통을 주는 인연도 있고

​또 서로에게 해가 되지도 않고 도움이 되지도 않는 정말 수많은 인연들도 만나게 될 것이고


혹시 정말 연리지(連理枝)같은 하나뿐인 인연을 만날수도 있을것 입니다.






바닐라들과 에세머(SMER)들이 엮여가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서로 사랑하고 위하고 아끼면서 연리지(連理枝) 같은 인연을 찾는 것이 바닐라 들이라면
한쪽은 고통과 학대를 주고 다른 한쪽은 그 고통과 학대를 받으면서 연리지(連理枝) 같은 인연을
만들어 가는것이 에세머(SMER) 들이겠지요


물론 그 방식은 다르더라도
서로에 대해서 관심과 애정이 그 바탕이라는 점에서
바닐라 들이나 에세머 들이나 그 인연(因緣)이 주는 의미는 같을 수 밖에 없겠지만요

아니 그 의미가 같아야 하겠지요 그것에 에셈(SM)이고 그것이 인간관계 이니까요







체벌(體罰)이라는 칼

디엣(DS)을 맺은 주종(主從)커플이 플파와 다른점은
이제 돔(DOM)에게 섭(SUB)의 일상을 통제할 권한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물론 어느정도까지냐 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돔(DOM)은 그 통제를 벗어난 경우에 체벌(體罰)의 권한을 가집니다.
제가 전에 체벌(體罰)이 진정한 디엣(DS)의 시작 이었다는 포스팅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체벌(體罰)이 권리이지만 그 반대로 의무가 된다는 사실은 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체벌(體罰)을 받아들이는 것이 섭(SUB)의 의무인것은 알겠는데 무슨 돔(DOM)의 의무이냐고요?


돔(DOM)은 섭(SUB)을 지배하면서 너를 이만큼 통제하고 이만큼 보살펴주고 이만큼 배려하겠다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섭(SUB)을 가둡니다. 울타리라는 말은 돔(DOM)이 정한 경계 이지요
만약에 섭(SUB)이 그 경계를 넘는다면 응당 체벌(體罰)을 통해서 섭(SUB)을 다시 울타리 안에
집어 넣고 다시 그 울타리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노비(奴婢)제도가 존재하는 중세시대가 아닙니다.
돔(DOM)과 섭(SUB)이 디엣(DS)을 맺는다는것은 하나의 약속을 하는것과 같습니다.
즉 돔(DOM)은 내가 너를 지배하고 통제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고
섭(SUB)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복종하겠다는 약속을 하는것 입니다.











그리고 섭(SUB)은 그 안에서 돔의 관심과,애정,배려를 원합니다.


섭(SUB)을 배려한다면 체벌(體罰)을 미뤄주거나 눈 감아주어야 하는것이 아니냐고요?


그것은 섭(SUB)을 배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섭(SUB)은 바닐라가 아니라(SUB) 입니다.
누군가에게 복종하고 통제받고 싶어하는 존재가 바로 섭(SUB)입니다.
누군가에게 관심과,애정을 받고 싶고
그리고 그것을 정말 끊임없이 거듭 확인받기를 바라는 존재 또한 섭(SUB)입니다.


어떤 섭(SUB)들은 그것을 확인받기 위해서 일부러 벌 받을 짓을 만들어 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우리가 흔히 샘 이라고 부르는 스마트한 매저와는 다릅니다.
스마트 한 매저는 일부러 맞을짓을 해서 자신의 육체적 만족을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지금 말한 일부러 벌 받을 짓을 만들어 하는 섭(SUB)들은 육체적 만족을 추구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주인의 관심을 확인하려고 하는 경우이지요


즉 내가 이런일을 했는데 주인님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네 나에대한 관심이 식으셨나...
하고 불안해 하고 초조해 하는 것이 바로 섭(SUB)입니다.
그런 경우에 매질은 섭(SUB)에게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돔( DOM)이 섭(SUB)의 의도를 눈치 채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것 봐라 감히 나를 시험하려 들어 괘씸하네..." 하면서 일부러 모른척 하는 경우도 있고
'내가 하고싶으면 하는거지 체벌(體罰)을 꼭 해야 하나 내가 주인인데, 주인이 왜 섭(SUB)에게 휘둘려야 해?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것이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것이고
아니면 디엣(DS)을 맺은지 오래된 커플중에서 그냥 귀찮아서 체벌(體罰)을 미루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아니면 정말로 이제는 관심이 식어서 그냥 무시하는 경우도 있을것 입니다.


정말로 관심이 식어서 그냥 무시하는 경우라면 곧 디엣(DS)을 끝내고 싶어하시는 분 일테니 상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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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관심은 식었는데 그냥 플 하고 성욕을 해소하는 도구로 쓰려고 그냥 유지하시는 분들은 설마 안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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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디엣(DS)을 끝내고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돔(DOM)은 매를 들어야 합니다


정말 나는 섭(SUB)을 아끼고 사랑해서 매를 들 수가 없다는 분들 계십니까?
그럼 그 아끼고 사랑하는 섭(SUB)이 떠날지도 모릅니다.


위에서 말한것 처럼 섭(SUB)은 섭(SUB) 이니까요
섭(SUB)은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한 통제와 구속 을 바라는 존재들 입니다.
애정과 신뢰가 신선한 요리 재료라면 통제와 구속  그리고 체벌은 그 재료를 다루는 요리사의 솜씨입니다.


두가지 중에 한가지가 부족하면 디엣(DS)이라는 요리를 망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체벌(體罰)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체벌(體罰)을 함으로써 돔(DOM)의 섭(SUB)에 대한 지배력은 강화되겠지만
돔(DOM)이 나태해져서 체벌(體罰)을 잊는다면
섭(SUB)의 돔(DOM)에 대한 경외심과 복종심은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한번 배려를 위해서 체벌(體罰)을 미룬다면 그것은 섭(SDUB)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요


섭(SUB)의 의도를 눈치채고 섭(SUB)에게 휘둘릴 수 없다는 마인드로 체벌(體罰)을 미루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다면 감히 돔(DOM)을 의심하고 휘두르려고 한 그 버르장머리 없는 섭(SUB)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체벌(體罰)의 방법이 꼭 매질 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 방법은 그 섭(SUB)을 가장 잘 아는 그 돔(DOM)이 선택해야 겠지만
체벌(體罰)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체벌(體罰)이란 돔(DOM)의 권리이자 의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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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체벌(體罰)거리가 되지 않는 일을 가지고 체벌(體罰)로서 의미를 일부러 부여하는 분들은 안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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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7일 일요일

원증회고(怨憎會苦)


모던타임즈 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워낙에 오래 된 영화라서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시겠군요
저 역시 초딩시절에 봤으니까 몇년 전 쯤인지...


찰리 채플린이 주연한 작품중 명작이라고 부를만 한 몇편 중의 한편이지요
이 영화는 제목 처럼 모던 해 지던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시기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 역시 많은 명장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은 채플린이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볼트를 계속 반복해서 조립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대량생산의 시기에 단순한 작업을 끝없이 반복하는 장면 이지요


공장 근로자들의 식사시간까지 줄여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으로 식사를 하게 해 주는
기계를 발명한 기업가가 채플린에게 밥을 먹이는 장면에서 기계가 고장나서
기계에 달린 내프킨(이라고 기억함) 역할을 하는 손바닥 처럼 생긴 기계가
채플린의 뺨을 계속해서 때리는 장면도 기억에 남지만


역시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 장면 이로군요











실수로 기계의 톱니바퀴에 끌려 들어간 채플린이
맞물려서 돌아가는 톱니바퀴 사이를 우주인들이 우주를 유영하듯이
흘러다니는 장면입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이지만 이 장면에서
채플린은 인간이 아닌 기계의 한 부속품 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것도 제자리에 있는 부속이 아니라 잘못된 위치에 있는 쓸모없는 부속이지요


이렇게 톱니바퀴 사이를 흘러 다니던 채플린은 기계에서 빠져 나온 뒤 해고를 당합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의 톱니바퀴 속에서 채플린 이라는 인간은
조금도 다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 다니지만 결국 해고를 당하는 것이지요
즉 그 맞물림 속에서 채플린은 기계의 맞물림을 방해하는 필요 없는 존재 일 뿐이니까요


어렸을 적이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특별한 사람이 아닌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다 이런 맞물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겠지요
매일 똑같은 일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가다가
그 일 들이 끝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그때가 된다 하더라도 직장이라는
조직에서의 일은 끝 나겠지만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죽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끝없이 계속될 맞물림 이니까요




원증회고(怨憎會苦)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8가지 고통중에서
애별리고(愛別離苦)와 더불어 인간관계 때문에 생기는 두가지 고통중의 하나이지요


애별리고(愛別離苦)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밖에 없어서 느끼는 고통이지요
이것을 주제로 수없이 많은 시와 소설 연극 문학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실 숫자를 센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할 정도지요
사랑을 주제로 다룬 작품중에 80%정도는 새드 엔딩이고 나머지 20%정도는 해피엔딩 이겠지요


그런데 이 원증회고(怨憎會苦)라는 말은 애별리고(愛別離苦)와 달리 사랑하는 사람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정말 보기 싫은 ×같은 인간들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고통을 뜻합니다.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이해 하시겠지요
아니 꼭 직장생활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는 누구나 느끼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보기 싫은 인간들을 꼭 보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애별리고(愛別離苦) 라는 고통은 젊을 수록 강하다가 나이를 먹으면 조금씩 약해지는데
원증회고(怨憎會苦)라는 고통은 나이를 먹는다고 없어지는것이 아니라 한결같다는 것이지요
아니 개인적 으로는 나이를 조금씩 먹어갈 수록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것 같군요
직장생활을 하면 할 수록 왜 이리 꼴보기 싫은 인간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월요일이라서 그렇겠지 라고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일을 계속 할 것이고,월요일은 계속 될것이고, 그 인간들을 계속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고통을 참아내는 것에 대한 대가로  많은것들을 얻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