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1일 화요일

길복순

자연사 하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에 다들 동의 하시려나요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영화 "길복순" 입니다.


이 작품을 보는 내내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존윅"

그리고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이라는 영화가 겹쳐 보였다는건 우연이 아니겠죠



일단 

이 영화에서 주인공 길복순은 돈을 받고 사람을 대신 죽여주는 "킬러"입니다.

그것도 사람을 죽여 주는 살인회사의 에이스 킬러입니다.


1900년대 초반에 실제 미국 뉴욕에 근거지를 둔 마피아 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 하는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소위 "살인 주식회사"라는 것을 만들어서

운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에 실제 킬러로 활동했던 사람들의 정체는 대부분 베일에 쌓여져 있지만

그 최상위 지휘계층이 누구였는지는 대충이나마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영화 소설등에서 이미 단골처럼 그 이름들이 나오고 있으니 제가 구지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군요


아마도 영화 "존윅"이나 "회사원"같은 작품들도 그 "살인 주식회사"의 존재 및 운영방식등에 대해서

영감을 얻어서 제작 되었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모 글자 그대로 저의 생각입니다.


아무튼 

MK라는 이름을 가진 청부살인 회사의 에이스 인 길복순은 회사 보스의 남다른 신임을 얻고 있죠

그 이유는 나중에 나오는데 너무 직접적인 스포가 될것 같으니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보스의 여동생이자 그런 오빠의 길복순에 대한 애정을 시기하는 동생이 있죠


또 MK만큼의 권위는 없지만 여러 중소 청부살인회사 들이 있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MK의 눈치를 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언젠가 MK의 아성을 넘어서기를 바라고 있는데

재미있는것은 작가의 풍자인지 감독의 풍자인지 모르지만 1950년대 명동일대를 주릅잡았던 실제 폭력조직

신상사 파의 이름을 그대로 본뜬 신상사 라는 청부살인회사의 CEO도 등장합니다. 실제 신상사는 육군 상사로 제대를

해서 신상사라고 불리웠는데 여기서도 그에 걸맞게 군용 야전상의를 걸친 모습으로 등장하는 군요 

실제 신상사라는 사람은 일반적인 조폭과는 달리 정치에도 깊숙히 관여했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풍자라고 보이기도 하는군요


거기다가

회사에 소속되기는 했지만 길복순 처럼 에이스 대접을 받지는 못하는 삼류 킬러들도 등장하고

부상을 입어서 퇴출된 연로한 킬러도 등장하는 군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두가지 주목할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길복순은 싱글맘 이라는 사실이죠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으면서 남자가 아닌 여자를 좋아하고

엄마 몰래 담배까지 피워대는 딸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사람을 죽이는 일이 가장 쉽고 잘 해내는 사람인데 사춘기 딸을 케어하는 일은

그보다는 100배는 더 힘들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죠

죽여야 하는 자 들은 감정이 섞이지 않는 남 이지만 딸은 바로 딸 이니까요

당장 내 치통이 기아에 시달리는 나라 100만명의 굶주림 보다도 나에게는 더 큰 고통이니까요




두번째는

MK라는 회사는 청부살인회사인데

유능한 킬러들을 고용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팜(Farm) 시스템을 구축해서 예비 킬러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연습생들은 날마다 구슬땀을 흘리며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으며 길복순 처럼 되리라 스스로 다짐을 하죠

연습생이란 글자 그대로 연습생이죠 연습을 통해서 기량을 연마하고 기량이 차고 때가 갖춰지면

데뷔를 하고 그 후에는 또 자기의 노력과 관리에 따라서 인기를 유지하기도 하고 반짝하고 사라지기도 하죠

그런데 이 살인청부 연습생들은 살인청부업자로 데뷔를 하기 위해서 구슬땀을 흘립니다.

그러다가 데뷔를 해서 길복순 처럼 되기도 하겠지만 데뷔 자체를 실패하는 사람은 대체 어찌 되는건지...

또 데뷔를 했다 하더라도 잘 하지 못하면 반짝하고 은퇴가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고 끝이 나는 인생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습생들은 열심히 연습을 합니다. 언젠가 업계 1위 MK의 정식 청부업자가 되기를 꿈 꾸면서요 



또 길복순을 질투하던 보스의 여동생이 길복순을 제거하려 시도하는 장면에서 

보스의 여동생은 각 회사 삼류 킬러들로 생활고에 시달리고있는 길복순의 친구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지금 길복순을 제거하면 전부 다 MK의 B급 킬러로 고용해 주겠다고요

삼류인 C급 킬러들과 부상으로 장애가 생겨 강제 은퇴당한 킬러까지 이 신분상승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장면은 비장하고 잔인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군요


이 부분이 바로 존윅이나 회사원 같은 영화들과 차별화 되는 부분이로군요

존윅에서는 킬러들이 각각 건별로 현상금을 쫓아 움직이고 

회사원 같은 작품에서도 능력별로 일반사원에서 대리로 과장으로 승진을 하는 시스템 이지만

이 작품에서 킬러들은 길복순 같은 FA급이 아니라면 모두다 궁상을 떠는 모습입니다.

저마다 A급이 되기를 꿈꾸고 일단 B급이라도 되기를 꿈꾸죠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의미일까요?

사람을 죽이는 청부업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거기서도 A급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이

어쩌면 실제 연예기획사의 연습생들이 데뷔를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또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뚫고 회사에 들어가서도

끊임없는 경쟁에 시달리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애를 쓰는 군상들을 보는것 같군요



그 외에는 직접 관람하시기를 권해 드리지만 



일단 이 작품은

영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존윅"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의 세계관과 뼈대를 거의 그대로 차용했고

장면장면 순간순간 두 작품 외에도 여러 작품들의 설정과 장면들을 거의 베끼듯이 따라 했습니다. 


첫장면에서

일본 야쿠자를 처리(?) 하는 장면에서 잠이 든 야쿠자를 상대로 싸우지 않고도 조용히 처리를 할 수 있었는데

구지 잠든 야쿠자를 깨워서 1:1로 합을 겨루는 쓸데 없는 짓을 하죠 프로 답지 못한 행동이지만

아무튼 간만에 호승심을 일깨우는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한 야쿠자가 기분이 업 된 상태에서

길복순에게 말 합니다.


천일의 수련을 단(鍛), 만일의 수련을(鍊) 이라고 

즉 자신은 일본도를 만일(萬日) 즉 30여년간 수련했다는 뜻인데

그말은 그저 야쿠자의 자기 자랑일뿐 길복순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죠


시간이 없다면서 권총을 꺼내서 야쿠자를 사살해 버리는 장면은

1982년작 "레이더스"에서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가 칼춤을 추는 칼잡이를 처리 하는 장면도 생각이 나기도 하고


연습생들이 열심히 기술을 연마하는 장면은 영화 공공의적 1-1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하고


업계 1위 회사 MK의 대표가 각 회사의 대표들을 모아놓고 3대 원칙을 강요하는 장면은

SF소설의 선구자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 떠오르기도 하고


젊은 시절의 MK보스가 자연사 하시려면 착하게 사셨어야죠 하는 장면은 

부르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레드"의 한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동학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장면인지도 의심스럽고 

더불어 로맨스의 시작을 의미하는 장면인지도 의심스럽게 만드는 군요


또 마지막 장면에서 MK보스의 길복순과 보스에 대한 관계는

혹시 영화 "킬빌"의 설정을 역으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떠오르기도 하는군요






모 생각해 보면

모든 창작물은 기존 예술의 영향을 받고 거기다가 5-10 퍼센트 정도의 독창성을 가미해 준다면 

감사할 일 이기도 하다는 말이 있죠

최근 타계한 영화음악의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가 자신의 곡을 표절 했다는 어떤 음악가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해 준 답변이죠 국적을 떠나서 참 존경할 만한 인물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94년작 "헐리우드키드의 생애"의 주인공 임병석 도 

헐리우드 키드 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헐리우드 영화 스토리에 빠져 살다가

그 모든 기억들을 자신의 창작으로 착각하는 인물이죠 거짓과 위선이 아닌 순수한 착각이죠



하지만 이 작품 "길복순"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말처럼 기존 예술의 영향이라기 보다는 그냥 베끼기를 시전했고

임병석 처럼 순수한 착각이 아닌 대놓고 따라하기 라고 할 만 하군요

그것도 너무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따라하다 보니 뭐라고 해야 할까요?

비빔밥에 밥은 없고 채소와 고기 그리고 나물만 가득한 비빔밥이 아닌 비빔음식이 되어버린 느낌 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혹시 모릅니다. 대놓고 따라하기가 아닌 의도적인 따라하기 일 지도요

여지껏 수많은 영화 연극 소설에서 그런 의도적인 따라하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단 그 따라하기가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불러일으키느냐에 따라서 그 작품의 가치도 달라졌죠


그런데 지금 이 작품 "길복순"이 그런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불러 일으켰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군요


지나치게 쿨내 풍기는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가 부담스럽고

작위적인 설정 또한 소화하기 힘들군요 


물론 이것은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실제로 저의 주변에서 정말 재미있게 봤다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음식의 입맛이든 드라마의 입맛이든 각자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겠지요




PS: 그런데 최근에 읽은 기사에서

국내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SM에서

강남에 SMU라는 이름의 엔터테인먼트 학원을 설립했다는 소식을 들었죠

나름 고액이라고 할 수 있는 학원비를 내고 춤,노래,연기,모델,프로듀싱등을 배운다는군요

연습생이란 비록 삶은 고되지만 학원비는 내지 않는 연습생이죠 

연습생 개인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회사는 그런 연습생의 가능성을 보고 

공간과 자원 노하우를 투자해서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택하는 시스템 이라면

이 학원은 학원생이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원을 투입해서 공간과 노하우를 돈을 주고 사는 개념 이로군요

영화 "길복순"에서는 킬러 연습생들이 등장하는데

조만간 킬러 학원생들이 등장하는 작품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킬러라는 직업이 자기 자신의 시간 노력 돈을 투자하면서 까지 되고 싶은 직업이 된다는 뜻이죠

물론 영화 속에서 이겠지만요...






#길복순 

2023년 4월 10일 월요일

미성년자들이 말을 걸어 온다면...





미성년자들의 SM입니다.
전에도 한번 포스팅을 한적이 있었지만
이미 고등학생들이나 중학생들 사이에서도
에셈(SM)SM적인 놀이들이 번지고 있는것이 사실이라는 군요


하지만 만약 저에게 미성년자인 섭(SUB)성향을 가진 펨(FEM)이 말을 걸어온다면
과연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까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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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이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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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미성년인 펨섭(FEM SUB)이 말을 걸어 온다면...


조금 이야기를 해 보니 정말 섭(SUB)으로서의 성향이 확실하고
이미 SM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결국 언젠가 SM이라는 환상을 실현할 수 밖에 없는 펨(FEM)이라면
맬돔(MALE DOM)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말 자체를 섞지 않는것이 가장 좋을까...
아니면 좀 더 나이를 먹은 후에 이 세계에 발을 들이라고 충고를 해 볼까
아니면 섭(SUB) 성향이 확실하다면 내가 작업을 시작 해 볼까...


어떤 분들은 그냥 말 자체를 섞지 않는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것이고


또 어떤분들은 정말 성향이 확실하고 에셈(SM)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린친구라면
결국은 에셈(SM)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일것 이고 그렇게 여기 저기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가
상태 안좋은 변바들을 만나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성향을 저주하게 되느니 보다
차라리 내가 섭(SUB)으로 들여서 안전하게 에셈(SM)을 선물처럼 누릴 수 있도록 가르치는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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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런분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섭(SUB)은 지금 어른이 됐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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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분들은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되고 난 후에 이야기를 하자는 분도 계실것 입니다.





아직 성(性) 적으로 자기결정을 하기는 미숙한 미성년자들과의 관계는 양심상 용납하지 못할것 이고
사회적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도 하겠지요


만약
저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라고 한다면
저 역시 3번째 대답을 할 것 같군요
개인적인 양심이나 사회적인 지탄도 현실적인 문제 이겠지만
그보다도 환상을 실현시키기 전에 조금 시간을 두고 참아 보라고 말 하고 싶군요
그 환상이라는 것이 결국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환상을 잊고 살게 되는 경우도 가끔은 있으니까요


혹시 성향을 확실하게 깨닳았기 때문에 시간낭비를 하기 싫다는 분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번정도는 그 시작을 하기 전에 참아보라는 말을 하고 싶군요


에세머(SMER) 라는 성향이 어떤 사람에게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는 모릅니다.
다만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는 것은 장담할 수 있겠군요


모든사람들은 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 갈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그 선택 전에 한번 만 더 신중하라고 말 하고 싶군요
결국 그 선택의 대가는 본인이 치르게 딜 것이니까요
 

2023년 4월 3일 월요일

하이힐

숫기 있는 삶 살고 계신가요?



며칠전에 지인들과 광어 우럭 회에에 소주를 한잔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동성애와 젠더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죠



그리고 평소에는 


그 누구보다도 완벽한 마초적인 남성성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는 여성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죠


모 역사적으로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고


사실 우리가 흔히 펨돔 맬섭 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대부분의 맬섭들은 신체적인 능력이 펨돔보다는 뛰어난것도 사실이고


구지 펨돔 맬섭 커플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많은 돕 섭 커플중에


섭 이 돔 보다 나이가 더 많거나 객관적인 사회적 시선으로는 


학력이나 직장 소득 지위등이 더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돔 분들은 그런 경우에 더 큰 가학과 지배적 만족감을 느낀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어떤 섭 분들 역시 그런 경우에 더 큰 피학과 피지배적인 만족감을 느낀다는 경우도 있군요



그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 한편이 생각 났습니다.


SM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젠더성애 에 관한 이야기 였죠



2014년 작 하이힐 이죠


결국 내안의 그녀가 죽었다 라는 홍보 카피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장진 감독 차승원 오정세 이솜 배우등이 출연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윤지욱 이라는 이름을 가진 형사가 등장합니다



우월한 키와 근육을 가지고 있으면서


범인들을 체포할때 총이나 수갑등은 사용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완벽한 신체적 능력을 가진 완벽한 마초남 이죠


시크한 표정 절제된 행동 깎아 놓은듯한 외모를 갖고 있으면서 어떠한 위험에도 몸을 사리는 법이 없는


그야말로 상남자 중의 상남자 입니다.




그런 윤지욱을 경외하는 조직폭력배 보스(송영창)


같은 남자 이면서도 그런 윤지욱을 흠모하는 보스의 동생이나 넘버2(오정세)


그런 윤지욱이 롤 모델인 후배 형사(고경표)


그런 윤지욱이 꼭 필요한 형사반장(김응수)


그리고 그런 윤지욱을 짝사항 하는 장미(이솜)



윤지욱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 부터 경외 흠모 존경과 사람을 받는 남성성의 끝판왕 이지만


그런 윤지욱은 사실 속에 여성성을 가진 사람이죠 


그런 여성성을 숨기기 위하여 일부러 터프하게 행동을 하면서 오히려 주변사람들에게는


그 터프함이 더하고 더해져 이제는 전설로 불리우게 된 캐릭터 입니다.



하지만 윤지욱은 언젠가는 


이런 가식적인 남성성을 벗어버리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고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동화되고


그들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드디어 이전까지 누렸던 완벽한 터프남의 이미지를 벗고 내재된 여성성을 추구하면서 살려고


수술까지 결심한 그 순간에 뜻밖의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마초남 윤지욱을 흠모하던 조직의 넘버2 죠


형사와 범죄자 라는 대결구도 속의 인물이고 같은 남자지만


실로 흠모할 만한 남성성의 상징과도 같았던 윤지욱이 사실은 여성성을 가진 인물임을 깨닫고


알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에 빠진 넘버2튼 폭주하면서 윤지욱의 주변을 파괴하기 시작하고


그런 넘버2 로부터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윤지욱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선택이란 이 영화의 광고 카피처럼 내안의 그녀를 죽이는 일 이군요 





자세한 내용은 직접 감상하시기를 바라면서



몇가지 생각해 볼만한 것들이 있었죠


첫번째는 왜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차승원 이었느냐죠


쉽게 이해가 됐습니다. 얼굴 몸매 키 목소리 말투 분위기등 감독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남성성 이었겠죠


정 반대의 이미지를 더 강조하기 위해서 완벽한 남성성을 찾아냈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리고


넘버2는 왜 그리 분노 했을까요


정말 같은 남자로서 완벽한 남성성 이었던 윤지욱이 실은 여성성 이라는 것을 알고 무슨 감정을 느꼈을까요


왜 분노 했을까요?


넘버2가 평소 남성우월 주의자라서 여성들을 열등하게 보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같은 남성성 으로서 흠호하던 윤지욱이 여성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내가 저 열등한 ㄴ 을 그동한 흠모 했었나 하면서 분노 했던걸까요?


아니면 넘버2 역시 윤지욱과 같은 성 을 가진 사람이라 자신이 갖고 싶었던 것이 


자신이 가질 수 없는것 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했던 것 일까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윤지욱도 물론 중요하지만


넘버2가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분노하면서 윤지욱의 주변을 파괴하려는 이유가 정말 궁금하더군요


넘버2는 윤지욱보다 더 많은 돈 그리고 더 많은 검은 권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현실속에서 윤지욱이 남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것들을 가진 인물이죠


단 한가지 윤지욱 에게서 보여지는 강력한 남성성을 빼고는요 


그 한가지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어쩌면 넘버2가 그 어떤 조직보다도 더 권위적인


암흑가 조직의 넘버2 여서 일지도 모르겠군요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이미지 일테니까요


부하들이 돈과 권력에 충성은 하겠지만 그 충성이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에 대한 충성이지


자신이 가진 남성성에 대한 충성은 아닐테니까요 그래서 윤지욱이 가진 그 강력한 남성에 대한


강력하고 터프한 이미지를 흠모하는 거 일지도 모르겠군요 




우리가 흔히 남자가 왜 그리 숫기가 없어 라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숫기란 활발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 기운이라는 뜻이고 그 뜻은 수 즉 수컷 다운 기운이라는 뜻 이죠


즉 남성이라는 성 을 가진 사람들의 기운이라는 뜻에서 비롯됐습니다.


남자들은 당연히 숫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군요



살아오면서 


윤지욱과 넘버2는 남자로서 끝없이 숫기가 있을것을 요구 받았겠지요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숫기가 가득해 보여서 그 누구도 윤지욱 에게는 그런 요구를 하지 못하지만


윤지욱은 오히려 내면에 여성성을 감추면서 억누르고 사는 인물이고


넘버2는 자신에게 부족한 숫기 


그 숫기란 다른사람이 자신을 바라봐 주는 기운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 숫기가 가득한 윤지욱을 흠호하다가 


윤지욱에이 여성성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폭주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결국 파멸에 이릅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오래전부터 집안의 아들들에게


끝없이 요구해 왔던 남자다움의 끝 이라고 할수도 있겠군요





또 마지막 장면


수술을 위해서 출극하려던 윤지욱이 


후배 형사가 살해됐고 장미가 납치됐다는 사실을 알고


택시를 타고 돌아와서 화장을 하고 여자옷을 입은 상태로 


넘버2의 부하들과 혈투를 벌이는 장면이 있죠


화장한 얼굴과 여성임을 드러내 주는 나풀거리는 흰 옷이 피로 물들어 가는 장면


화장한 얼굴에 땀과 피 그리고 눈물이 범벅이 되는 장면


어쩔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장면이고 주인공의 서글픈 현실을 반영하는 장면이군요



공항에서 부터 윤지욱을 태우고 와서 다시 나올때까지 기다려 준 택시기사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죠


기다렸는데 다시 데려다 주겠다고 


그런데 윤지욱은 공항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원래 있던 자리에 남게 됩니다.


여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윤지욱을 응원하고 도와주던 사람에게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인사를 대신 전 하면서요




평소에는 윤지욱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던 장미가


윤지욱이 피우려는 담배를 강제로 뺏어 버리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장미는 윤지욱이 어렸을때 사랑했던 같은반 남학생의 여동생 이기도 하죠


그리고 윤지욱이 지켜야 할 사람이기도 하고요







PS: 혹시 강력한 남성성을 강조하려면 차승원 이라는 배우 보다는


     차라리 마동석 배우나 다른 마초스러운 배우들도 많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분들도 계시겠군요


     그렇다면 이렇게 답을 드리고 싶네요


     


     마동석 배우가 차승원 배우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얼굴을 가졌다면 당연히 가능할 것 이라고요


     결론은 마동석 배우는 차승원 배우처럼 色示 하지가 않으니까요



#하이힐 #자유글

2015년 1월 1일 목요일

호시우행(虎視牛行)





호시우행(虎視牛行)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불교 종파중
가장 큰 종파인 조계종의 큰 스님이셨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부도에 적혀있는 글귀이지요


호랑이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행동은 소 처럼 하라는 말 입니다.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듯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만
행동은 소 처럼 신중하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예의 바르게 하라는 뜻이겠지요


나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날카로운 이성과 함께
진중하고 너그러운 감성도 함께 품어야 하겠습니다.




신년 벽두에
이 호시우행(虎視牛行) 이라는 말을 가슴에 한번 새겨봐야 겠군요


허섭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분들도
2015년 한 해 바라시는 것들을 다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 12월 28일 일요일

후회 혹은 미련

간만에 쉬는 일요일에 한가함을 즐겨보려고
성북동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걸어다니던 중에
길상사 앞을 지나가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너무 늦은 후회를 한 한 여자의 이야기가 기억 나는군요
-후회였는지 단순한 미련이었는지는 모르겠 지만요-


백석이라는 시인을 기억하시는 분들 계시겠지요
월북시인으로 몰려서 한동안 이나라에서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금기시 됐던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원래 병안도에서 태어나신 분인데 고향에 계시다가 6.25 전쟁이 발발해서
못 내려오셨으니 그런분을 구지 월북이라고 분류하는것 자체가 불합리 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이분이 서울에 계실때 4살 연하의 김영한 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생과 연애를 시작했다는 군요
이 애인을 끔찍이 아껴서 이름대신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서 불렀다는 군요 무척 정감이 가는 호칭이지요
그러던 어느날 현실에서 자기 자신과 기생의 신분인 연인과 맺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한 로맨틱한 시인은
연인인 김영한 에게 사랑의 도피를 제의 합니다.
당시 러시아로 도망가서 함께 살자고 제의한 것이죠
물론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이런 이야기 거리가 생기기 않았겠지만
여기서 여러 사람들의 말이 갈립니다.


백석 시인이 먼저 러시아로 가서 자리를 잡고 연인을 불렀는데
기생의 신분으로 수많은 방탕한 남자들의 허언에 시달렸던 김영한이 백석을 믿지 못하고 결국
따라가지 않아서 헤어졌다는 설 도 있고
김영한이 연인인 백석의 장래를 위해서 백석의 청을 거절하고 백석 시인이 홀로 떠났다는 설 도 있습니다.
어느것이 정답인지는 모릅니다. 저는 뭐 그런 사연들을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아무튼 그 이후로 백석시인은 러시아를 거쳐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 후에 6.25 전쟁이 터지면서
둘은 영원히 재회하지 못하게 됐다는 군요




그 후에 성북동에서 대원각 이라는 이름의 요정을 운영하면서 많은 재산을 모았던 김영한은
법정스님과 인연이 닿아서 그 대원각을 통째로 법정스님에게 맡기게 되고
법정스님은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지어주고 대원각을 허문 자리에 김영한의 법명을 딴
길상사 라는 사찰을 지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평생을 혼자 살다가 돌아가신 김영한 여사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모은 이 수많은 재산은 그가 남긴 시 한줄 보다도 값어치가 없었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돌아가셨다는 군요


'그런데 어쩌라고 그럴거면 진즉에 그사람을 따라갈 것이지...'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김영한 여사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한마디가 후회일까 아니면 미련일까 생각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후회와 미련이 뭐가다르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후회란 지나간 잘못에 대한 나중에 누우친다는 의미지요
곧 잘못을 저지른 후에야 할 수 있는게 후회입니다.
하지만 미련이란 잘못한것은 아니지만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니까요
뭐 둘다 같다고 생각한다면 같을 수도 있는 말이겠지요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김영한은 결과적으로 백석 시인의 구애를 거절했지요
그 거절이 혹시 더 좋은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기생이라는 직업 때문에 생긴 남자들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버림받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일수도 있겠지요
또 정말 연인 백석의 장래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론은 김영한은 백석 시인이 내민 손을 뿌리치고 말았지요


그때의 김영한은 젊고 아름답고 앞으로 얻을 수 있는것들이 많았지요


그러다가 많은 재산을 모으고 그 댓가로 나이를 먹고
더이상 재산이 필요 없어진 김영한 여사는 그 재산을 사회에 대부분 되돌려 주고 나서
백석 시인의 시 한구절이 자신이 모았던 그 많은 재산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는 말을 하지요


과연 젊어서 아직 돈이 필요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때에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햇었느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김영한 여사는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 군요


다만 생각을 해 보건데


후회를 하거나 혹은 미련을 가지거나


그것들은 다 그럴 때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늙어서 기력도 떨어지고 당연히 건강도 안 좋아졌을 것이고
더이상 좋은 옷이나 맛있는 음식도 필요 없어지고
주위에 사랑을 해 주거나 사람을 받을 사람이 남지 않았을 때
자신의 생애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줬던 백석이라는 남자가 남긴
한마디 한마디가 그많은 재산들 보다 더 의미있는 기억으로 여겨졌을수도 있을테니
그때의 김영한 여사에게는 백석과의 이별이 후회이거나 혹은 미련일수도 있겠지요


아니 정확하게는 그 전부터 후회나 미련이 있었겠지만
그때의 김영한 여사에게 그것이 가슴에 시릴만큼 다가왔다고 하는것이 맞겠군요


무엇인가 후회를 할만한 일이나 혹은 미련을 가질만한 일 을 한 후에
남은 평생 동안 그 기억을 가지고 살게 되겠지만
그 남은 평생 사는동안 내내 후회나 미련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슴이 시릴만큼 느끼게 되는 때가 찾아 온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때 라는 것은
늘 그런것처럼 이미 지나서 되돌릴 수 없을 때라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후회 혹은 미련이라는 말을 할때가 되면
그말을 들은 사람은 이렇게 말 하겠지요
"왜 이제?"


그것은 지금이 그 때가 된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미 늦어버려서 아무것도 되돌릴수 없겠지만
그래도 늦은 후회라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하는 사람이 낫겠지요
다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그 말을 듣고 그동안이 서운함이 조금이나마 사라질지
아니면 아무것도 되돌릴수 없는 그 때에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이 더 화를 돋울지는 모르겠군요


저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조금 심했나... 싶은 순간들이 몇번 있었습니다.
과연 세월이 조금 더 흐른후에 그것이 후회나 혹은 미련으로 느껴질지는 아직은 모르겠군요


그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일이니 미리 서둘 필요는 없을것 같군요
물론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각오를 해야 하는 일 이겠지요










PS:그런데
     김영한 여사는 평생을 혼자 지내셨는데
     백석 시인은 그 후로 결혼을 3번이나 하셨다는 군요
     해피엔딩 이거나 아니면 새드엔딩 이거나...
    
    



2014년 12월 25일 목요일

진짜 스팽키(SPANKEE)?

가끔 커뮤니티 챗방 같은 곳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다
특히나 스팽킹(SPANKING)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성향이 스팽키(SPANKEE)라는 분들과 이야기를 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스팽키(SPANKEE)라는 성향이 정말 여러번의 플 이나
디엣(DS)관계를 거쳐서 스팽키(SPANKEE)라는 성향을 발견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사실 에셈(SM)을 시작하시면서 소프트한 스팽킹(SPANKING)외에 다른 경험은 없이
그 경험만을 가지고 본인이 스팽키(SPANKEE)라고 말씀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실 커(KER)이든 키(KEE)이든 새디(SADI)나 매저(MASO)나 돔(DOM) 혹은 섭(SUB) 이거나
가장 처음에 현실적으로 접하는 플이 바로 스팽 이겠지요 아마도


그리고 특히나 펨(FEM)분들 중에는
그런 상황에서 불가피한 성(性)적인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스팽키(SPANKEE)라는
단순한 성향으로 자부하시는 분 들도 의외로 많으시더군요


처음 만나는 파트너와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피하고 싶은 경우도 있겠지만
다른 플레이(PLAY)까지 가능한 파트너로 발전하거나 혹은 디엣(DS)으로 발전할수도 있는
파트너를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성(性)적인 접촉만은 피하고 싶거나
혹은 그런 관계를 갖더라도 일단 충분한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피하고 싶은 생각에
키(KEE)라는 성향으로 자신을 표현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생각을 해 보면
예전에 정말 스스로 마조(MASO)를 자처하거나 키(KEE)를 자처하시는 분들은
일체의 성(性)적인 접촉에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반대인 새디(SADI)나 커(KER)분들도 마찬가지 였죠
다만 그것이 남녀간의 성(性) 적인 접촉이 주는 느낌이 없었기 때문인 분들도 계셨고
에셈(SM)파트너 외의 남편,아내 혹은 애인들에 대한 죄책감 같은 심리적인 원인을 포함한
다른 이유들도 있었던건 같습니다.




스팽키(SPANKEE)라는 성향은 맞는 역할을 하는 에세머(SMER)인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스팽키(SPANKEE)라고 해서 다 같은 스팽키(SPANKEE)는 아닙니다.
어떤 키(KEE)는 맞기 직전의 긴장되는 분위기에 더 반응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키(KEE)는 맞는 순간순간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맞는 순간 보다도 맞고 난 후에 그 부위를 세게 만져주는
2차적인 느낌을 더 좋아하는 키(KEE)도 있었고
맞을때 피부에 전해지는 느낌 보다는 그 순간에 이를 악물고 등골에
식은땀이 나면서 머리속이 하예지는 느낌이 좋다는 키(KEE)도 있었습니다.


이 많은 느낌들 중에서 한가지를 콕 찍어서 이것이 키(KEE)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키(KEE)란 맞는 역할을 하면서 그것에 만족하는 에세머(SMER)의 유형이고
커(KER)란 그 반대의 때리는 역할을 하면서 그것에 만족하는 에세머(SMER) 이겠지요
그 만족감을 주고 또 느끼는 원인은 각자 다 다르겠지요
물론 같을수도 있겠지만요




가끔 진성 혹은 오리지널 커(KER) 혹은 키(KEE)를 자처하시는 분들을 보게됩니다.
그런분들은 오직 스팽킹(SPANKING)이 좋은 분들 이겠지요
스팽 외에는 다른부분들은 돌아보지 않는 분들 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분들 외에도 다른 이유로 인해서 스팽커(SPANKER) 나 혹은 스팽키(SPANKEE)를
자처하시는 에세머(SMER)분들도 많은것 같습니다.


하긴 이유가 중요한것은 아니겠지요
전에도 이야기 한것처럼
에셈(SM)이 삶의 전부가 될수는 없으니까요
현재 내가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딱 맞는 만큼 즐기는 것이 에셈(SM)이겠지요
그런 상황이 커(KER)이거나 키(KEE)이거나 혹은 마조(MASO) 새디(SADI)
돔(DOM)과 섭(SUB) 그리고 아주 드믈지만 마스터나 슬레이브 같은 성향을
결정하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을 하면 성향이라는 것은 단순한 성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향과 자신의 현실적인 상황을 더해서 결정된다는 것이 맞을것 같군요
또 그것에 만족감을 느낀다면 에셈(SM)이라는 것이 삶에 선물이 되겠지만
그것에 만족을 못 하고 현실을 무시한 성향만을 따지는 에셈(SM)이라면
수없이 많은 에세머(SMER)들이 입에 회자 되는 상처 혹은 저주가 되겠지요




다만 에세머(SMER)나 바닐라들이나 자신이 정한 바 그 선을 지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이겠지요 이미 다들 아시겠 지만요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한계를 넘지 마세요

데이빗 캐러딘 이라는 이름의 배우를 기억하시는 분 많으시겠죠
1970년대 미드 쿵푸 시리즈로 큰 인기를  었었 던 배우입니다.







그당시의 데이빗 캐러딘 입니다. 30대 였지만 나름 풋풋 하군요


원래 이 미드 쿵푸 시리즈는 불멸의 액션 스타인 이소룡이 주연을 노렸다는 군요
그리고 거의 성사단계에 있었는데 난데 없이 주연이 바뀌어서 데이빗 캐러딘의 출세작이 됐답니다.
그 자세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요
또 이소룡과 캐러딘 두명의 배우가 다 사망한 지금 시점에서 이야기 할 필요도 없겠군요

 이 쿵푸라는 드라마 이후 데이빗 캐러딘은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성공한 시리즈 물의 주연이었던 배우는 그 시리즈 물에서 보여준 캐릭터가 고착화 돼서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기가 힘들다는 속설처럼 그저 그런 배우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쿵푸2 시리즈의 주연을 맡았지만 예전같은 인기를 얻기는 힘들었죠


그러다가 "킬빌"이라는 영화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킬빌에 출연할 당시의 모습이군요 무려 30여년의 시간차이가 있으니 모습이 많이 변했군요




그런데 지금 이 데이빌 캐러딘 이라는 배우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사람이 2009년에 태국의 모 호텔에서 목을 매 죽은채로 발견 됐습니다.
당시에 자살을 할 이유가 없어서 타살설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만
타살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해서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아는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요
데이빗 캐러딘이 혼자서 브레스(Breath)를 즐기다가 사고로 교사(絞死) 했다는 것이지요
즉, 데이빗 캐러딘은 스스로 목을 맨 상태에서 흥분을 즐기다가 사고로 사망한 것이지요


캐러딘 말고도
몇년 전 쯤에 독일에서 어떤 남자가 자동으로 접혀지는 전동침대에 누워서
밧줄로 목을 감고 침대의 전동 리모콘을 손에 들고 침대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브레스(Breath)를
즐기다가 실수로 리모컨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교사(絞死) 하는 사고가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수치는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상당히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이런 사고로 사망하고 있다고 하는 군요


목을 졸리면서 숨이 멎을때의 그 느낌을 저는 모릅니다.
다만 예전에 제가 데리고 있었던 강아지 하나가 브레쓰에 특히 민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날 집에서 혼자 옷걸이를 이용해서 브레쓰를 해도 되냐고 물어보기에
쫓아가서 기절할 때까지 맴매를 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브레쓰는 금지 했지만요




디엣(DS)을 맺은 주종간에나 혹은 플파(Play Partner)사이에
플레이 라는 것을 하다 보면
가끔 어떤 정해진 한계를 한번 넘어서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 시작할때는 그렇게 자극적이고 흥분을 주던 것들이
늘 하는 플레이, 늘 마주하는 상황 들로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때가 오지요


돔(DOM)이나 새디(SADI)들이 가학을 하는 상황에서
본인들이 그 플레이(PLAY)에 식상해 지거나
혹은
피학을 당하는 섭(SUB)이나 마조(MASO)들의 반응이 처음과는 다르게
약해진다고 생각 될때나
아니면 다른 이유들 때문에라도
한번쯤은 한계를 넘어서 보고픈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도 새디(SADI)나 돔(DOM) 분들이라면 그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 보셨을 것 같고
저는 커(KER)로써 그런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군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계를 넘는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구지 위에서 이야기 한 브레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피학의 대상자가 아무리 성향이 강 하더라도
사람의 몸 이라는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가학과 피학을 주고 받는 그 상황에서 피학의 대상자 들이
그 분위기와 그 흥분에 못 이겨 그것을 요구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늘 그렇듯이 정신이 피곤하게 스스로를 컨트롤 하고 그 상황 이후를 생각할 사람은
돔(DOM)을 비롯한 가학의 주체들 이어야 겠지요


혹시 만약에라도
그 시간, 그 장소, 그 상황의 분위기에 이끌려서 피학의 대상자 들이
하는 요구에 휩쓸리게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가학의 주체로서 자격을 의심받게 될 것입니다.


에셈(SM)이라는 것이 삶의 전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셈(SM)이라는 것은 삶의 일부이고 그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가 되어야 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지배와 가학하는 자의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이겠지요


에세머(SMER)로 살면서 몇몇 가까이 해서는 안될 인간들의 유형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중에 가장 가까이 해서는 안될 인간들이
바로 에셈(SM)이 인생의 전부인 것 처럼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이겠지요


이 사람들은 에세머(SMER)들이 흔히 부르는 변바라는 유형들 보다도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에세머(SMER)란 변바들 과는 달리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말들을 하기 전에
에세머(SMER)등 변바든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이겠지요


안전제일(安全第一) 이라는 1970-80년대 산업현장에 붙어있던 말이 생각 나는군요
아마 지금도 그렇게 붙어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